[전우용 칼럼] 권력과 부동산



[전우용 칼럼] 권력과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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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 역사학자


1904년 러일전쟁을 도발한 일본은 한국 정부에 ‘한일의정서’를 강요하여 한반도 내에서 ‘군략상(軍略上)’ 필요한 토지를 임의로 수용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


일본이 전쟁 수행에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빼앗은 토지는 3천만 평에 달했는데, 그 대부분은 ‘철도부지’, 즉 철도 궤도와 역사(驛舍) 주변 땅이었다.


이어 일본군은 ‘임시군용철도감부’를 설치하고 일본인 시부자와 에이이치[澁澤榮一] 등이 설립한 경부철도주식회사의 철도 부설권은 매수했으며, 한국 황실이 공사 중이던 경의철도 부설권은 강제 빼앗았다.


한반도를 남북으로 횡단하는 두 철도는 1년 여만에 속성 공사로 완공되었다. 일본군은 필요 이상으로 많이 빼앗은 철도역사 주변 땅을 일본인 이민자들에게 헐값으로 불하했다. 철도가 개통되자 상품 유통로는 철도역 중심으로 재편되었으니, 역사 주변 땅을 불하받은 일본인들은 일약 부동산 거부 겸 유력 상인이 되었다.


‘권력’의 ‘권(權)’ 자는 본래 토목공사 구조물을 형상화한 글자다. 피라미드, 만리장성, 대운하 등 고대의 거대 구조물들은 자체로 당대 권력의 크기를 표상한다.


노동 통제 체계를 갖추고 노동력을 징발하여 지표상에 표시를 남길 수 있는 힘이 곧 권력이다. 예컨대 ‘도로(道路)’라는 말에서 ‘도(道)’는 ‘권력자가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인위적으로 닦은 길’을, ‘노(路)’는 여러 사람이 지나다니다 보니 저절로 생긴 길을 의미한다. ‘왕도(王道)’라는 말도 그래서 생겼다. ‘큰길’은 왕이나 권력자만이 만들 수 있는 길이었다.


그런데 기차, 자동차 등 근대적 교통수단이 발명되기 전에는 왕도가 땅값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농경지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주로 ‘비옥도(肥沃度)’였고, 택지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주로 ‘경관(景觀)’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도로 인접성보다는 풍수상 길지(吉地)인지 흉지(凶地)인지, 전에 살던 사람이 출세해서 이사갔는지 아니면 패가망신했는지를 더 많이 따졌다. 집을 사고팔 때도 건물이 몇 칸인지만 기록했지, 대지 크기는 따로 기록하지 않았다.


건물과 대지의 비율에 대한 관습적·문화적 기준이 있었던 데다가 ‘보천지하(普天之下) 막비왕토(莫非王土)’, 즉 ‘모든 땅은 왕의 것’이라는 관념적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업과 무역이 발달하고 근대적 교통수단이 출현함에 따라 철도역과 대로변의 경제적 가치가 올라갔다. 게다가 자본주의는 경제적 가치 이외의 다른 가치들을 빠른 속도로 부차화했다.


도로 건설과 도시 개발, 재개발과 해당 지역의 땅값 사이에 정비례 관계가 성립했고, 이런 토목사업들을 결정하는 ‘권력’은 이 관계를 이용해 돈을 끌어 모았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이런 관계를 이용해 여러 가지 명목으로 일본인들에게 부(富)를 몰아 주었다. 새 철도 건설 계획을 세우고, 그 노선을 일본인들에게 미리 알려준 뒤 땅을 사게 하는 것이 가장 흔한 방법이었다.


도시 내 도로 확장 사업인 ‘시구개수사업(市區改修社業)’에서도, 도시 주변 농경지를 시가지로 바꾸는 ‘구획정리사업’에서도 정보의 사전 유출은 일반적이었다. 개발업자에게 뇌물을 받고 특정 지구의 개발 계획을 세운 일도 있었다. 제4대 조선 총독 야마나시 한조[山梨半造]는 이런 ‘독직(瀆職)’ 때문에 취임 2년만에 해임되기도 했다.


해방은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양의 ‘국유지’도 선물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소유했던 주택과 토지는 모두 ‘적산(敵産)’이 되어 미군정 관리로 넘어갔다가. 정부 수립과 동시에 한국 정부 소유가 되었다.


이들 ‘부동산’에 관한 권리는 원칙상 국민 모두에게 있었으나, 역대 독재 정권은 이를 마음대로 처리하여 ‘정치자금’이나 사적 ‘치부(致富)’에 이용했다. 이승만 정권 때에는 주로 기업, 공장과 주택 불하에서 ‘야바위’로까지 일컬어진 정부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만연했으며, 5.16 쿠데타 직후에는 시가지에 가까운 곳에 있는 엄청난 양의 국유 임야들이 ‘특혜, 정실 불하’라는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쿠데타 관계자들의 소유로 넘어갔다.


정부 주도 대규모 개발사업의 효시리고 할 수 있는 서울 강남 개발과 관련해서는 이미 유명해진 일화가 있다. 당시 대통령 경호실장은 서울시 건축과장을 헬리콥터에 태우고 강남 상공을 배회하면서 미리 매입해 둘 땅을 지적해 주었다.


강남 개발 계획은 그 뒤에 완성되었고, ‘대통령 경호실’이 미리 사둔 땅값은 수십, 수백 배씩 폭등했다. 지방에서도 고속도로 인터체인지와 고속버스 터미널 입지 선정에서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다고 한다.


전두환 정권 때에는 한강변 저지대를 택지로 바꾸는 ‘공유수면매립’ 사업과 88서울올림픽 대비 도시 환경 정비라는 미명하에 진행된 ‘합동재개발’ 과정에서 ‘토건비리’가 층생(層生)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며, 노태우 정권 때에 진행된 서울 주변 4대 신도시 개발과 관련해서도 ‘비리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근대 이후 도로 건설과 토지 개발은 언제나 해당 지역 토지 소유자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직결되는 문제였다.


자기네 동네 도로에 아스팔트를 깔아 달라거나, 신설 도로가 자기네 선산을 비켜 가게 해 달라거나, 버스 종점을 자기네 동네에 만들어 달라거나 하는 것은 거의 모든 동네의 ‘상습 민원’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다수의 민원’보다는 권력자와 가까운 특정인의 이해 관계에 따라 결정되어 왔다는 것은 굳이 다른 자료를 찾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집단 경험’에 속한다. 도로 건설이나 도시 개발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벼락부자가 되는 반면, 또 어떤 사람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일은 늘 반복된 ‘역사적 장면’들이었다.


최근 국토부는 서울-춘천 고속도로의 상습 정체를 해소하기 위해 계획되어 15년째 추진 중인데다가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통과한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을 기이하게 뒤튼 ‘변경안’을 제출했다가 그 노선이 대통령 부인 처가 소유 땅과 관계 있는 것 아니냐는 야당 의원을 질의에 ‘계획 중단’을 선언했다.


도로 노선 변경은 수많은 사람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중대한 문제다. 저의가 의심스러운 국정 현안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국회의원의 당연한 책무다.


의혹에 대해 성실히 해명하는 것도 정부 각료의 당연한 책무다. 그런데 원희룡 장관은 “고속도로 노선 변경과 대통령 처가 땅의 위치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당연한 질문에 버럭 화를 내고는 국책 사업을 제멋대로 취소해 버렸다. 이것만으로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인데, 그 다음에도 더 황당한 일들이 벌어졌다.


“민주당이 의혹 제기에 대해 사과해야 사업을 재개하겠다”는 건 도대체 어떤 발상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가? 정부는 나아가 고속도로 노선 변경 문제를 ‘주민투표’로 결정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라고 한다. 고속도로 건설은 ‘국책 사업’이지 ‘지역 단위 사업’이 아니다.


그런데도 해당 지역 주민 일부는 대통령 처가 땅에 대한 문제 제기 때문에 공사가 중단되었다며, 야당 의원들을 질책한다. 공사를 중단하거나 재개할 권한은 국회가 아니라 정부에 있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참는’ 사람들의 실례를 이처럼 잘 보여주기도 어려울 것이다. 사람들의 그런 심리를 이용해 사익을 취하는 권력은 이제껏 지긋지긋할 정도로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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