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보수 정권 때 사람이 더 죽어나갈까




“왜 보수 정권 때 사람이 더 죽어나갈까” / 시사IN(2012.03.16.)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575


장정일 작가


뉴욕 대학 정신과 교수이면서, 교도소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폭력 방지 프로그램을 10여 년 넘게 열어왔던 제임스 길리건은 미국에서의 살인율과 자살률에 관한 두 가지 의문에 맞닥뜨렸다. 첫째,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과 자살을 하는 사람은 성향이 아주 다르게 취급되는데도 어째서 살인율과 자살률은 동시에 올라가거나 내려가는가? 둘째, 미국인의 심성에 의미심장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보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에 어째서 살인율과 자살률이 어떤 때는 곱절 이상 늘었다가 또 어떤 때는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가?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교양인 펴냄, 2012년)는 위의 물음에 성실하게 답하고자 하는바, 첫째 질문을 푸는 열쇳말은 ‘수치심’이다. 지은이는 살인이나 자살을 저지르도록 만드는 최고 원인으로 수치심을 지목하면서, 스스로 ‘바보 취급당했다’는 것을 은폐하고 남에게 자신의 수치심을 전가하기 위해 나온 행동이 폭력이나 살인이라고 말한다. 반면 수치심으로 인해 좌절이나 분노를 느끼기는 하지만 죄의식(양심)이 내면화된 사람은 수치심으로 생겨난 공격성을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로 돌리게 되는데, 그것이 자살이다.


흥미롭게도 지은이는, 수치심의 윤리와 죄의식의 윤리가 각기 ‘우파’와 ‘좌파’의 이념이나 정념과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수치심의 윤리는 모욕받지 않기 위해 ‘나 홀로 성공’을 추구하면서 강자를 동경하고, 죄의식의 윤리는 겸손을 미덕으로 삼으면서 약자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예컨대 무상급식을 둘러싸고 똑같은 경제 조건을 가진 두 가구의 가장이 극명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을 제임스 길리건 식으로 해석하자면, 그들은 각기 수치심의 윤리(우파)와 죄의식의 윤리(좌파)를 대변한다. 이런 분석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자살과 살인을 ‘폭력 치사’라는 한 단어로 묶어 쓰는 지은이의 첫째 질문에 대한 해답은 무척 명료하다. “사람들이 수치와 불명예를 느낄 위협에 노출되지 않고 하루아침에 신분이나 지위가 뚝 떨어지는 추락을 겪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서는 폭력의 수위가 낮아진다.”


■ 108년 동안의 놀라운 통계


이인삼각 경기처럼 연동되어 있는 살인율과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한 사회가 신봉하는 수치심의 윤리가 순화되고, 사회 구성원이 수치심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예방할 줄 알아야 한다는 지은이의 문제의식을 염두에 둔 채, 둘째 질문을 다시 상기해보자. 미국에서는 1900년부터 해마다 자살률과 살인율 통계를 내는데, 지은이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2007년까지 나온 통계에서 아래와 같은 특이 사항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통계 수치를 이렇게도 잘라보고 저렇게도 썰어보았지만, 폭력 치사 발생률이 오직 공화당 정부 때만 전염병 수준으로 올라가고 오직 민주당 정부 때만 전염병 수준 밑으로 내려간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중략) 공화당 집권기에는 자살률과 살인율이 연간 변화 누적치에서 모두 순증가세를 보였고, 민주당 집권기에는 순감소세를 보였다. 정당과 폭력 치사 발생률이 안정된 상관관계를 보이고 내가 그것을 논박하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남은 질문은 이것이 과연 무엇을 뜻하느냐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기고 어째서 이런 일이 반복해서 일어날까?”


지은이가 말하는 ‘전염병 수준’의 폭력 치사 발생률이란 인구 10만명당 19.4명(평균치)~26.5명(최고치) 사이를 가리키는데, 미국 인구 3억명을 놓고 생각하면 수치가 1만 커져도 매년 폭력 치사로 죽는 사람이 9·11 테러 때 쌍둥이 빌딩에서 목숨을 잃은 수(2796명)보다 많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책 30쪽에 실려 있는 108년 동안의 통계와 지은이의 설명을 보면 아이젠하워와 카터 때, 단 한 번씩 예외가 있었을 뿐 폭력 치사 발생률이 비전염병 수준에서 전염병 수준으로 올라가는 일은 공화당 정부에서만 일어나고, 전염병 수준에서 비전염병 수준으로 내려오는 일은 민주당 정부에서만 일어난다. 미국에서 이 책이 출간된 2011년에는 아직 2007년 이후의 통계가 나오지 않아서 조지 부시의 마지막 해와 오바마 정권에 대한 평가가 없지만, 클린턴 때 해마다 이어지던 내림세는 아들 부시가 집권하자마자 오름세로 돌아섰다.


둘째 질문의 답을 알기 위해서는, 염두에 두기를 당부했던 첫째 질문의 해답을 되새겨야 한다. 공화당 정권 때마다 전염병 수준의 폭력 치사 발생률이 발생하게 된 까닭은,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더 미국민의 수치심과 좌절감을 불러일으키는 ‘실업, 상대적 빈곤, 사회·경제적 지위의 추락’을 부추기고 방관하는 정책을 썼기 때문이다. 아이젠하워(공화당)와 카터(민주당)는 자기 당이 아닌 상대편 당의 경제정책을 썼기 때문에 통계의 예외가 될 수 있었다. “두 정당이 폭력 치사 발생률에서 180도 다른 결과를 가져왔으므로 백악관 주인으로 공화당을 뽑을 것이냐, 민주당을 뽑을 것이냐는 삶과 죽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공화당은 선거 때마다 ‘경제를 살리고, 범죄를 줄이겠다’는 공약으로 표심을 잡아왔다. 하지만 ‘더 많이 가진’ 10%를 위한 공화당의 경제정책은, 범죄를 줄이는 것과 정확히 반대된다. 엄벌주의를 통해 범죄를 줄이겠다는 공화당의 구호는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이간하고 유권자로 하여금 민주당을 범죄에 유화적인 당으로 인식시키려는 술책일 뿐, 범죄율을 높이 유지해야만 자신의 선거공약이 통하는 공화당으로서는 폭력 치사 발생률을 근절할 정치적 의지나 정책이 아예 없다.


■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 벌이는 이유


혹시 이 책이 ‘통계의 마술(조작)’에 바탕한 것이라고 미심쩍어하실 분에게는, 로익 바캉의 〈가난을 엄벌하다〉(시사IN북 펴냄, 2010년)를 함께 권한다.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나라에서는 복지정책이 쇠퇴하고 실업자는 증가하는 반면, 전반적인 사회 안전망이 파괴된다. 복지정책의 쇠퇴는 사회 전반을 혼란과 무질서로 몰아넣는데, 이때 국가는 자신이 불러온 혼란과 무질서를 다잡기 위해 ‘범죄와의 전쟁’을 벌이게 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로익 바캉은 그 과정을 ‘경제국가 소멸→사회복지국가 약화→형벌국가 강화’라는 간략한 공식으로 정리하면서, 미국은 세계에 신자유주의뿐만 아니라 ‘범죄 엄벌주의’도 함께 수출했다고 주장한다. 미국발 신자유주의가 죄수의 급증을 낳고 교도소를 양산했다는 그의 주장은, 미국 우파의 여러 정책이 폭력 치사 발생률을 높인다는 제임스 길리건의 주요 논리를 빈틈없이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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