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혁의 생각] '이념 쿠데타'의 비극
[김준혁의 생각] '이념 쿠데타'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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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 한신대 교수
1537년(인조 15) 1월 30일.
인조는 남한산성 서문으로 나와 삼전도(三田渡)로 향했다.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에게 항복하러 가는 것이다. 그 추운 겨울에 눈속 남한산성을 내려가는 국왕의 행렬은 비통하기 짝이 없었다.
당시 사관은 이렇게 기록했다.
“被擄子女望見, 號哭皆曰 "吾君、吾君, 捨我而去乎?" 挾路啼號者, 以萬數”
(사로잡힌 자녀들이 바라보고 울부짖으며 모두 말하기를,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를 버리고 가십니까.” 하였는데, 길을 끼고 울며 부르짖는 자(청으로 인질, 노예 등으로 끌려가는 사람을 이름)가 만 명을 헤아렸다)
당시 국왕 인조와 조정 대신들의 무능으로 청나라에 인질과 노예로 끌려간 사람들이 무려 60여만 명이 되었다. 당시 조선 전체의 인구가 800만 명 정도였으니 전체 인구의 8% 가까이가 청나라로 끌려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역사상 최고의 비극을 1910년 8월 29일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던 ’경술국치(庚戌國恥)‘와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에게 항복한 삼전도의 비극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 삼전도의 비극은 왜 일어나게 된 것일까? 세종대왕 이후 문화를 풍성하게 하고 경제적 안정을 이루었던 조선이 왜 청나라에 항복하게 된 것일까? 물론 그 사이 국제적 상황과 조선 내부의 상황이 연계되어 임진왜란이 일어나 7년 동안 미증유의 고통을 겪긴 하였지만 일단 임진왜란은 우리의 승리로 끝나 다시 국가 재건의 기반을 마련하였는데, 왜 다시 삼전도에서 조선의 국왕이 10여만 명의 백성들 앞에서 세 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바닥에 박는 일을 해야만 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실용을 버리고 오로지 이념에만 몰두하였기 때문이다.
광해 임금을 몰아내고 국왕이 되고자 했던 능양군(인조)과 서인 세력들은 철저한 ’숭명(崇明) 주의자‘들이었다. 임진왜란이 우리 조선인들의 힘으로 승리한 것이 아니라 명나라 군대의 참전으로 인하여 이긴 것이라고 맹신하였다. 수많은 조선인 의병들과 백성들이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순신의 투쟁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로지 대국인 명나라의 힘으로 승리한 것이라는 비자주적인 사고에만 매달렸다. 그들에게 이념은 오로지 대국 명나라에 대한 절대 충성이었다.
그러니 임진왜란의 비극을 몸으로 겪은 광해 임금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추진하는 중립외교는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오랑캐라고 불리는 여진족의 힘이 정말 막강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광해는 망해가는 명나라가 여진족의 후금을 이길 수도 없고, 조선을 도와줄 수도 없음을 알고 있었다. 실용주의자들은 현실 분석이 기본이기에 광해는 이 현실에 기초한 시대 검증을 정확히 한 것이다. 그럼에도 광해는 명에 대한 몇 백년간의 관계를 인정하고 이를 최소한이라도 지키기 위해 명나라에 명분적 사대를 하고, 후금과 국교를 맺고 그들과의 관계도 발전시켰다.
실용을 모르고 오로지 이념만을 따지는 조선의 주자존숭주의(朱子尊崇主義) 사대부들은 광해를 맹비난했다.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모두 죽어도 오랑캐를 인정하지 못하고, 오로지 명나라만을 따르고 받들겠다는 것이다. 아니 나라와 백성이 모두 죽어도 망해가는 명나라만을 존숭하겠다니! 이것이 소위 나라를 이끌어가는 관료들과 지도층들이 할 수 있는 말인가?
이들은 국가와 백성을 생각하지 않은 자들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권력일 뿐이다. 나라와 백성이 모두 망해가도 자신들만 권력을 얻고 이를 통해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얻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능양군과 서인 세력들은 숭명(崇明) 이념과 광해가 오랑캐를 받드니 더 이상 조선의 국왕이 될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워 쿠데타를 감행했다.
그들은 이를 ’반정(反正)‘이라 불렀다. ‘반정(反正)’이란 올바른(正) 시대로 돌아간다(反)‘는 말이다. 그러나 그들이 한 일은 반정이 아니라 쿠데타이다. 국가와 백성을 위한 중립적인 실용외교와 선혜청을 신설하여 특산물 납품의 폐단을 개혁하는 실용적 개혁을 추진하는 광해의 정책을 완전히 폐기하는 올바르지 않은 ’이념 쿠데타‘를 자행한 것이다.
저들의 ’이념 쿠데타‘는 승리했다. 이 엉터리 ’이념 쿠데타‘는 성공할 수도 없고 성공해서도 안되었지만, 권력을 잡았던 광해 임금 세력의 무능과 일부 세력들의 타락과 변질이 백성들에게 신뢰를 잃게 되어 역사를 퇴행하는 ’이념 쿠데타‘가 성공할 수 있었다. 이것이 우리 역사의 비극이었다. 이로 인하여 이념을 통해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이후 역사는 실용이 아니라 이념의 강조로 권력을 이어갔다.
그들은 광해를 몰아내고 강대국으로 올라가는 후금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중국 땅 남쪽으로 쫓겨나 겨우 숨만 쉬고 있던 명나라만을 존숭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30만 명의 대군이 압록강을 건너 한양으로 내려오는데도 이 대군과 제대로 대항하지 못했다. 5,000여 기마병이 한양 밖 서강에 올때 까지도 한양의 봉화는 오르지 않았다. 이념에만 몰두하여 권력을 잡은 자들이 국방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이 국가 권력을 독점하였느니 어찌 나라가 안정될 수 있겠는가? 어찌 백성들의 삶이 안정될 수 있겠는가?
결국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도망가고, 45일간 웅크리고 있다가 굶주림 끝에 항복하고 말았다. 남한산성 안에서 군사들과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음에도 인조와 조정 관료들은 이념 타령만 하였다. 주자존숭주의와 숭명반청이라는 이념은 나라를 망하게 한 것이다. 그런데 권력자들은 크게 해를 당한 것이 없다. 백성들만이 노예로 압록강 넘어 이역만리 땅으로 비참하게 끌려갔고,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이산가족은 얼마나 많았는가?
2023년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 윤석열은 오로지 이념만이 나라를 발전시킨다고 한다. 이념만을 강조하다가 망한 역사를 알지 못하는가? 하긴 역사를 아는 자들이면 이런 무도한 정치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념도 국가와 사회 운영에 중요하지만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백성들의 민생(民生)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백성들이 안정되게 살아갈 수 있고, 나라가 외세에 휘둘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이념보다 실용이 우선되어야 한다. 조선후기 실학 군주 정조를 이야기한들 이들이 알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않겠지만 진심어린 마음으로 다시 이야기 한다.
이념만을 강조하면 결국 비극이 온다. 역사를 통해 배우기를 바란다.
’이념 쿠데타‘는 일시적으로 성공할 수도 있지만 반드시 패망한다.
’이념 쿠데타‘는 역사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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