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 힘에 의한 평화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압도적 힘에 의한 평화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 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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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 역사학자
■ 역사에 '힘에 의한 평화'는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원칙 중 하나는 ‘압도적인 힘에 의한 평화’다. 그는 취임 후에도 이 말을 여러 차례 했으며, 외교 안보 담당 고위 공직자들도 기회 있을 때마다 같은 말을 반복했다. 고대 로마제국의 군사학자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가 남긴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하라’는 말은 오늘날 평화에 관한 금과옥조(金科玉條)이자 명언(名言)으로 취급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당대 세계 평화의 파괴자는 거의 언제나 로마 제국이었고, 그 자신 전쟁으로 멸망했다. 로마제국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전쟁에 대비했던가, 아니면 전쟁으로 패권(覇權)을 잡고 치부(致富)하다가 전쟁으로 망했던가? 고대 로마제국이 유럽과 북아프리카, 서아시아 일대에서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과시한 국가였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정말 로마제국이 지배한 세계는 평화로웠던가?
레나투스의 ‘힘에 의한 평화론’은 제국주의 시대, 침략주의자들에 의해 다시 소환되었다. 그들은 약소 민족을 대상으로, 또는 그들에 대한 지배권을 둘러싸고 침략전쟁을 벌이면서, ‘궁극적 평화’는 전쟁으로만 이룩된다고 강변했다. 한반도와 중국 대륙에 대한 침략 야욕을 품었던 일본의 정치인과 군인, 지식인들도 ‘힘에 의한 평화론’의 신봉자들이었다. 러일전쟁 직전, 일본 신문들은 ‘평화라는 글자는 붓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총칼로 쓰는 것’이라는 담론을 유포했다.
일본은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할 때에도, 주권 전부를 강탈할 때에도, ‘동양평화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침략주의자들은 침략 당한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고 몸을 묶어둠으로써 일시적으로 실현되는 ‘고요한 상태’를 평화로 간주했다. 그들은 그 ‘고요한 상태’를 깨뜨리는 저항이나 불만 표출은 즉각 ‘힘으로’ 억눌러야 한다고 믿었다. 그들에게 평화란 힘 가진 자가 힘 없는 자를 ‘꼼짝달싹 할 수 없게 억누르는 상태’를 의미했다.
■ 안중근의 평화론은 천리와 인도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하고 체포된 안중근은 사형 선고를 받은 뒤, 재판장에게 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쓰고자 하니 탈고할 때까지만 사형 집행을 늦춰 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얼마 남지 않은 자기 생을 다 던져 이루고자 했던 일은 이토 히로부미로 대표되는 일본 침략주의자들의 ‘평화론’을 공박하는 것이었다.
안중근은 동양 전역에 일본에 대한 원한을 쌓아둔 상태를 결코 평화라고 할 수 없다고 설파했다. 러일전쟁은 끝났으나 한반도는 여전히 일본군과 한국 의병 사이의 전쟁터였다. 안중근은 일본이 인도(人道)와 신의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고 보았다. 그는 평화를 이루고 유지하는 것은 힘과 무력이 아니라 천리(天理)와 인도(人道)라고 믿었다.
평화라는 말은 개인의 심적, 육체적 평온에서 국제질서의 안정에 이르기까지, 종교의 영역에서 정치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지만, 보통은 전쟁에 반대되는 말로 사용된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상황은 단순하게 정의할 수 없다. 전쟁을 준비 중인 상황, 또는 늘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지배되는 상황, 이른바 ‘준전시 상황’ 등은 모두 ‘전쟁적 상황’이다. 따라서 전쟁에 반대되는 개념으로서의 평화를 정의하기도 쉽지 않다. 당장 국경에서 전투행위가 벌어지지 않는 상황일 수도, 전쟁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상황일 수도 있다. 게다가 전쟁은 국가와 국가 사이의 문제지만, 국내에서 내란 또는 그와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도 평화는 아니다.
중세의 유교 문화권에서는, 평화와 전쟁 대신 치(治)와 난(亂)이라는 구분법을 사용했다. 천명(天命)을 받은 황제 또는 왕이 하늘의 조화와 질서를 지상에 구현하는 것, 또는 그런 상태가 치(治)였으며, 치가 어지러워진 상태, 또는 치를 어지럽히는 행위가 난(亂)이었다. ‘요순(堯舜) 삼대(三代)의 치(治)’나 ‘정관(貞觀)의 치(治)’는 요순(堯舜)과 당 태종의 정치를 의미할 뿐 아니라 당대가 ‘잘 다스려진’ 시대였음도 의미한다.
왕조시대에는 군주가 특별한 위협을 받지 않고 제 역할을 하는 상태가 정상이었기에 보통은 왕의 묘호 뒤에 ‘치세(治世)’를 붙여 썼다. 동시에 치(治)는 왕정(王政)의 궁극적 지향점이기도 했다. 반면 왕의 안정적인 통치를 위협하는 행위는 그것이 외적의 침입이든 정치세력의 반란이든 민중의 저항이든 모두 난이었다. 임진왜란(壬辰倭亂)도 난이고 임오군란(壬午軍亂)도 난이다.
유럽 기독교 문화권에서의 평화 개념도 유교 문화권의 치(治)와 흡사하다. 히브리어 샬롬(salom)은 평화, 화평, 평강(平康), 평안 등으로 번역되는데, 개인과 공동체가 어떤 위협도 느끼지 않는 이상적 충족 상태를 뜻한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평화는 ‘신이 창조한 우주적 질서’로서 개인 간 또는 국가 간에 정의와 공평이 구현된 상태를 의미했다.
■ 세계 1차대전 후 자리잡은 '평화의 정의'
이런 정신사적 흐름 위에서 18세기 말 칸트는 평화를 ‘도덕적 실천적 이성의 절대적 명령’으로 정의했다. 16세기 과학혁명 이후 과학은 점차 신의 지위를 대신해 갔다. 헤겔이 ‘신의 의지’를 ‘절대정신’으로 대체한 것처럼, 칸트도 ‘신의 의지’를 ‘이성의 명령’으로 대체했다. 그는 평화를 인간 이성에 의해 확보되고 유지되어야 하는 ‘안정적 상태’이자 ‘정의가 구현된 상태’라고 보았다. 칸트의 평화론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 전역이 참화를 겪은 뒤, 평화에 관한 ‘정론(正論)’으로 자리 잡았다. 1921년 11월 26일자 동아일보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가 정립한 ‘평화론’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힘을 의(義)로 대신하고 편견을 공의(公義)로 대신하자 함이니 이를 국내에 적용하면 폭력정치와 전제정치를 배제하고 민의정치 여론정치를 실천하자 함이며, 이를 국제간에 적용하면 제국주의와 완력주의를 타파하고 공론과 협조와 이의(理義)를 사실문제에 확립하자 함이라."
‘평화(平和)’를 글자 뜻 그대로 풀면 ‘수평적 조화’가 된다. 위 아래 격차가 없는 것이 ‘평(平)’이니 그와 반대되는 글자는 ‘차(差)’이다. 서로 어울리는 것이 ‘화(和)’이니, 그와 반대되는 글자는 ‘별(別)’이다. 문자의 뜻으로만 보자면, ‘평화’의 반대말은 전쟁이 아니라 차별이다.
평화에 관한 안중근의 생각과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를 풍미한 근대적 평화 관념은 근본적으로 같았다. 평화는 힘이 아니라 ‘정의와 인도’로만 이룰 수 있다는 것, 차별과 혐오가 있는 곳에 평화는 없다는 것이 숱한 전쟁의 참상을 겪고 나서 인류 이성이 도달한 결론이었다. 1919년 기미독립선언서에 “이천만 함분축원(含憤蓄怨)의 민(民)을 위력으로써 구속함은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소이(所以)가 아니다”라는 문장이 들어간 것도, 그 공약 3장 첫 번째가 ‘금일 우리의 이 거사는 정의, 인도, 생존, 존영을 위한 민족적 요구이니’였던 것도 이런 결론에 따른 것이다. 나아가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한다”는 구절이 들어간 것도 이런 공동체적 신념에 기초한 것이다.
■ '평화를 위한 약속' 포기하는 윤석열 정부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갖춘 인간집단이 그렇지 못한 인간집단을 차별하고 억압하여 ‘함분축원(含憤蓄怨)’하도록 하는 것은, 평화를 지키는 길이 아니라 전쟁을 예비하는 길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하마스에 대해 ‘압도적 힘의 우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압도적 힘의 우위’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에 평화를 가져다 주었는가? ‘압도적 힘의 우위’를 확보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한, 그 땅에 평화는 깃들지 않을 것이다. ‘힘을 의(義)로 대신하고 편견을 공의(公義)로 대신하지 않는 한’ 평화가 자리 잡을 곳은 없다. 설혹 ‘평화’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사실 ‘전쟁을 예약해둔 상태’일 뿐이다.
남북간 대화를 파탄내고 ‘압도적인 힘에 의한 평화’만을 내세우는 윤석열 정부에게서 ‘평화’와 ‘안도’를 느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며칠 전 윤석열 정부는 남북간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으로 파기하는 문제를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평화를 위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침으로써 평화 자체를 파괴한 자들은, 언제나 상대에 대한 ‘압도적 힘의 우위’를 자신한 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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