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쿠데타 그리고 김오랑과 백영옥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 페이스북 글


<12.12 쿠데타 그리고 김오랑과 백영옥>


1991년 6월 어느 날 아침, KBS 기자로 부산시경 2진 겸 영도경찰서를 담당하던 시절. 늘 하던 대로 사건사고를 챙기고 있었다. 그 때 한 변사사건 보고서가 눈에 들어왔다. 변사사건은 경찰기자에겐 흔한 일이다. 그러나 그날은 뭔가 달랐다. 변사자는 백영옥. 추락사. 시력 상실 40대 초반 여성. 좀 더 알아봤다. 김오랑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변사자는 12.12 쿠데타 때 전두환 반란군에 맞서다 전사한 김오랑 소령의 부인이었다. 평소 눈이 좋지 않았던 백영옥 씨는 김 소령 사망 소식을 듣고 완전히 시력을 잃었다고 했다. 이후 부산 영도의 자비원이라는 시설에서 거주하다 변을 당했다.


백영옥 변사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초기에 자살로 몰아가려 했다. 그러나 백영옥 씨가 2년 전부터 전두환 노태우 최세창 박종규 등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해왔고, 12.12 진상규명과 남편의 명예회복을 위해 싸워온 점, 그리고 사망 며칠 전 눈 치료를 위해 외국으로 갈 준비를 했다는 점에서 자살 동기를 찾기 힘들었다. 경찰은 부검을 거쳐 결국 백 씨가 자비원 건물에서 아래 마당으로 추락 사망한 것으로, 즉 실족사로 사건을 종결했다.


당시 부검 현장에 입회했다. 여러 부검을 봤지만 그 때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부검장 공기는 마치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불의가 정의를 능욕한 배반의 역사, 그 소용돌이 속에서 일어난 남편과 아내의 잇단 비극이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부검 실시 내내 젊은 지휘 검사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경찰들은 애써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부검의만 자기 일에 집중할 뿐이었다.


검시 및 부검 결과 내부 장기 손상이나 특별한 외상은 없었다. 하지만 두부에 손상된 흔적이 나왔다. 의문의 상처였지만 부검의사는 추락 당시 머리가 바닥에 부딪히며 생긴 것이라는 소견을 냈다. 경찰도 부검 결과를 바탕으로 실족사로 결론내렸다. 당시 내 머릿속에는 ‘의문사‘라는 단어가 줄곧 맴돌았지만 데일리 기자로서 경찰 수사 결과를 넘어 뭔가를 더 해보기가 힘들었다.


나에겐 여전히 의문사로 남아있는 사건, 해마다 12.12만 되면 그 때가 떠오른다. 그런데 올해는 더욱 강렬하다. 나는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서울의 봄’ 영화가 불러일으킨 분위기 때문일 거다. 부채의식도 크게 느껴진다. 영화가 이런 역할을 하는데 도대체 언론은, 저널리즘은 뭐하는가? 이런 자괴감 때문이다. 


뉴스타파는 2019년부터 12.12 군사반란 40년을 맞아 ‘전두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 완결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초에 하나회 멤버들을 하나씩 추적하는 기획을 했었는데 거의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연말에 이르러 서울의 봄 신드롬을 무기력하게 바라보고 있다. 내년에는 우리가 해야할 일, 본질적인 일에 좀 더 집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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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 프로젝트 / 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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