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그곳에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 더칼럼니스트(2024.01.22.)

https://www.thecolumnist.kr/news/articleView.html?idxno=2663


전우용 역사학자


■ 쓰레기 취급당한 국회의원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장. 전북 지역 국회의원 한 사람이 입장하는 대통령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국정기조를 바꾸셔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국민이 불행해집니다.” 대통령은 악수한 손을 거둬 들이고 못 들은 척 계속 앞으로 나갔다. 그는 대통령 뒤에서 같은 말을 반복하려 했다. 그의 짧은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대통령 경호처 요원들이 그의 입을 틀어막고 두 팔과 두 다리를 들어올린 채 행사장 밖으로 나갔다. 이 상황에서 ‘끌려 나갔다’는 말은 쓸 수 없다.


‘끌려 나가는’ 사람은 적어도 자기 두 발은 땅에 댈 수 있다. 북한의 장성택도 공개석상에서 퇴장 당했고 중국의 후진타오 역시 공개석상에서 퇴장 당했지만, 쓰레기봉투처럼 ‘들려’ 내버려지지는 않았다. 허공으로 들어올려진 채 밖으로 버려지는 건 대개 쓰레기봉투다. 명색이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국민이 직접 선출한 국회의원을, 경호처 요원들이, 방송 카메라 앞에서, 공공연히 ‘쓰레기’ 취급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서 나는 첫 번째 ‘놀라움’을 느꼈다.


대통령이 직접 현직 국회의원을 ‘들어서 내다 버려라’라고 경호요원들에게 지시하는 장면은 보지 못했다. 경호처장이 독단으로 지시했음이 분명하다. 심지어 방송 카메라에는 그가 해당 국회의원을 손바닥으로 때리는 듯한 장면까지 포착되었다. 경호처장은 도대체 무슨 배포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쓰레기 취급했을까?


대통령의 심기를 경호해야겠다는 사명감에 불탔더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그만하시죠” 한마디만 하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국회의원에게 폭력을 행사하라고 지시했다. 왕조국가의 호위대장도 왕의 지시 없이 고관(高官)의 몸에 함부로 손대지는 못했다. 절대주의 군주국가나 1인 독재국가에서도 보기 어려운 장면이 눈 앞에 펼쳐졌다. 저들이 공직자인가, 아니면 조직폭력배인가? 나는 두 번째 ‘놀라움’을 느꼈다.


■ 자유민주국가에서 흔히 있는 '항의'


일반 시민이나 기자가 대통령이나 총리에게 큰소리로 ‘건의’ 또는 ‘항의’하는 일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일이다. 권위적이라는 세평을 듣는 통치자라도 그의 말을 끝까지 듣는 시늉은 한다. 사람의 말문을 막지 않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첫 번째 방편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말하는 국회의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자기 경호요원들을 만류하지 않았다.


‘국회의원’이라는 직함 자체가 ‘국민을 대표해 말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만류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사건’ 자체가 아예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국회의원에 대한 예의는커녕,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보여주지 않았다. 여기에서 나는 세 번째 ‘놀라움’을 느꼈다.


그 자리에는 정부 여당 사람들뿐 아니라 야당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 경호요원들이 국회의원을 쓰레기 봉투처럼 취급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도 항의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 역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행동했다. 때때로 박수치고 때때로 웃는 그들의 모습에 자기 이웃에 살던 유대인들이 매맞고 끌려가는 장면을 보면서도 ‘평범한 일상’을 영위했던 나치 시대 독일인들이 오버랩되었다.


■ 부당한 장면을 지켜보기만 한 허깨비들


이태원 골목에서 150여 명이 죽었어도 자기와는 ‘관계없는 일’로 취급한 사람들, 이태원 희생자 유가족들이 자식의 영정을 끌어안고 삭발하며 울부짖는데도 자기와는 ‘관계없는’일로 여기는 사람들, 아니 나아가 유가족들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사람들과 그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전부’가 남과 나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는 장면에서 나는 네 번째 ‘놀라움’을 느꼈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 법정의 아이히만에게서 ‘자신과 대화하는 능력’, 다시 말해 ‘자신에게 질문하는 능력’이 소거(消去)된 허깨비같은 인간형을 보았다. 그는 명령, 지시, 관행에 기계적으로 복종하고 적응할 줄만 알고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라고 질문할 줄은 모르는 ‘평범한 인간’은 ‘악의 도구’가 될 뿐 아니라 스스로 ‘악인’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히만을 인간 세계와 영원히 격리시키기로 결정한 예루살렘 법정은 모든 인간이 그런 ‘인간형’과 결별해야 한다고도 선언한 셈이다. 이것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의 약속이다.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것, 명령의 당부(當否)에 질문을 던질 것, 옳지 않은 명령에 저항할 것 등이 인류 보편의 책무로 자리 잡았다.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국회의원은 어떤 직책인가? 대통령 경호처 요원들이 국회의원을 쓰레기봉투처럼 대해도 되는가? 부당하고 불의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질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류는 이미 답을 찾았다. 그러나 그날 그 장소에 있던 사람들 중에 이 답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자리는 온통 아이히만 같은 허깨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 이 나라에는 파시즘을 실천하는 사람들과 그에 복종하고 순응할 준비를 마친 허깨비같은 사람들만 사는 듯하다. 그 자리에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쓰레기봉투처럼 들려나간 사람.


#윤석열 #매국노 #깡패 #정치폭력 #독재 #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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