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키핑, 아젠다 세팅, 프레이밍
송요훈 MBC 기자 페이스북 글
언론 독해법 공부하기 딱 좋은 시절입니다.
언론 공부, 어렵지 않습니다. 좋은 언론, 나쁜 언론 감별하는 눈만 있으면 됩니다. 게이트 키핑, 아젠다 세팅, 프레이밍.. 이 세 가지만 알면 됩니다.
1. 게이트 키핑(Gate Keeping)에 대하여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매일 수많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언론은 그걸 다 전할 수 없습니다. 어떤 기준을 정하고 취사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국민의 알권리, 공공의 이익 같은 거죠.
게이트 키핑은 시청자들에게 전해야 할 뉴스를 걸러내는 여과장치이고 검문소 같은 겁니다. 국민에게 알려야 할 가치가 있으면 통과시키고 그렇지 않으면 버리는 겁니다. 다리 건너의 뉴스소비자들은 검문소를 통과한 뉴스만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언론 교과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세상은 우리가 그린 세상이 아닙니다. 언론이 그려놓은 세상입니다. 조선일보만 보면 조선일보가 그려놓은 세상을 보게 되는 겁니다.
요즘 가장 뜨거운 뉴스는 ‘명태균 게이트’일 겁니다. 김건희 여사의 공천개입 의혹이 명태균 씨의 ‘비선 멘토’ 의혹으로 일파만파 확대되고 있습니다. 김건희 여사의 눈치를 살피는 용산 대통령실의 행태를 폭로한 김대남 전 선임행정관의 전화 녹취도 대통령실과 여당을 흔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일보에는 명태균 기사가 보이질 않습니다. 조선일보만 보는 뉴스소비자들은 왜 난데없이 명태균이라는 사람이 튀어나오고 공천 개입이 어쨌다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을 겁니다. 김대남 보도 역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는 본질은 없고 왜 그런 사람을 대통령실에 기용했느냐, 그런 사람이 공기업 감사로 간 게 말이 되느냐는 곁가지만 있습니다.
게이트 키핑은 무엇을 보도하고 보도하지 않을지 정하는 취사선택입니다. 그 기준은 국민의 알권리와 공공의 이익이어야 합니다. 사주의 이익이 보도의 기준이 되어선 안 됩니다. 권력의 정치적 유불리가 보도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언론은 시민을 위해 복무해야 합니다. 그게 좋은 언론입니다. 사주에게 복종하고 권력에 아부하는 언론은 나쁜 언론입니다.
2. 아젠다 세팅(Agenda Setting, 의제 설정)에 대하여
아젠다 세팅은 언론의 의제 설정 기능입니다. 뉴스의 가치와 중요도를 정하는 것이죠. 신문의 1면에 실린 보도, 한 면을 다 차지한 기사는 중요해 보입니다. 1면에 실리면 눈에 잘 뜨입니다. 지면의 한쪽을 차지한 작은 기사보다 전면을 차지한 기사는 무게감이 다릅니다.
TV뉴스에서 가장 먼저 방송되는 톱뉴스는 뒤에 나오는 뉴스보다 중요해 보입니다. 두세 개의 관련 꼭지가 연달아 방송되고 기자나 전문가가 출연하여 앵커와 짧게 대담이라도 하면 시청자들은 그날의 중요한 뉴스로 받아들입니다.
검찰이 나를 건드리면 윤석열 대통령은 한 달 안에 하야하거나 탄핵될 거라는 ‘협박성 발언’까지 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도 조선일보 1면 톱기사는 ‘북-중 수교 75주년을 맞아 접경지역 단둥을 가다’라는 제목의 르뽀 기사였습니다. ‘북한은 철조망 둘러쳐진 수용소’라는 기사는 있는데, 장안의 화제가 되는 명태균 기사는 없습니다.
조선일보가 ‘정치 브로커’로 깎아내리는 명태균 씨는 윤석열 대선후보 시절에 윤 후보의 자택을 무시로 드나들었다는데, 어떤 비밀을 갖고 있는지 검찰이 자기를 건드리면 윤석열 정권도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협박까지 하는데, 조선일보의 지면에는 일파만파로 커지는 ‘명태균 게이트’ 기사는 없었습니다. 반면, 문재인 전 대통령의 딸이 음주운전을 했다는 기사는 이틀 연속으로 보도했습니다.
언론의 의제 설정은 여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언론시장에서 점유율이 큰 언론사일수록 영향은 크죠. 같은 의제를 크게 보도하거나 반복적으로 보도하면, 독자들은 중요한 의제로 받아들이고 남들도 그럴 거라고 믿게 됩니다. 그게 군중심리죠. 요즘 누가 신문을 보냐고 하지만 조선일보의 영향력은 만만찮습니다. 언론이 매체 영향력을 무기로 보도가 아닌 대중심리전을 하게 되면 여론 형성이 왜곡됩니다.
3. 프레임(Frame) 씌우기에 대하여
국정감사가 시작되자 국감장마다 김건희 이슈가 빠지지 않습니다. 의혹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야당과 그걸 막으려는 여당의 공방전이 치열합니다. 인터넷으로 중계되는 국감 현장을 보노라면 트집을 잡거나 막무가내로 국감을 방해하는 여당 의원들의 행태가 안쓰럽고 역겹기까지 합니다.
프레임 씌우기는 언론사가 뉴스의 중요도만이 아니라 의미까지 정해주는 겁니다. 좋은 의미에서는 해설이 되지만 악의적인 프레임 씌우기로 뉴스 소비자의 뇌를 조종할 수도 있습니다.
언론 윤리에 기사나 칼럼을 쓸 때는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야 하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선 안 된다는 규정이 있는 건, 독자나 시청자에게 선입견이나 편견을 주입하지 말라는 겁니다. 뉴스소비자의 사고를 언론사가 짜놓은 틀에 가두어 독자적인 판단을 방해하지 말라는 겁니다.
조선일보는 명태남 이름 앞에 ‘정치 브로커’라는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웁니다. 명태남씨와 윤석열 대통령 부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아니라 주고받은 대화나 문자 메시지가 유출된 게 문제라고 합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이른바 십상시의 일탈행위가 아니라 그걸 조사한 보고서가 유출된 게 국기문란이라는 식으로 사안의 본질을 왜곡했었지요.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를 공격하는 것이고, 달을 보라는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시비를 걸며 국민의 시선을 돌리게 하는 전형적인 본말전도의 여론 호도입니다.
‘김건희 의혹’이 이슈가 된 국감 소식을 전하는 보도에는 정치 공방, 정쟁 프레임을 씌웁니다. 이재명 재판을 끼워 넣는 흙탕물 만들기로 본질을 흐립니다. 혐오 프레임, 이념 프레임을 씌워 독자들의 판단을 마비시킵니다.
정치 이슈를 여야 공방으로 치환하는 정쟁 프레임은 국민의 정치 불신을 자극하여 정치 냉소에 빠지게 하는 고전적인 수법이지요. 정치 불신의 수혜자는 투표율이 저조해야 선거에서 유리한 정치집단입니다.
사실 보도란 사안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포괄적인 맥락으로 전하여 뉴스소비자들이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보도입니다. 공정 보도란 특정 집단, 세력, 견해에 치우치지 않은 공평무사한 태도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보도입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양쪽 의견을 반반씩 전하는 게 공정한 보도가 아닙니다. 꼬투리 잡아 물고 늘어지고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리는 주장을 그대로 전하는 게 객관적인 보도가 아닙니다. 사안의 본질을 가리는 대중 동술입니다.
한국의 대다수 주류 언론은 사실 보도, 공정 보도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진실 규명을 방해하고 사실을 은폐하는 정치적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시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주 또는 권력을 위해 복무하고 있습니다. 보도가 아니라 국민의 상대로 그들이 의도한 방향으로 여론을 몰고가는 대중심리전을 하고 있습니다.
좋은 언론과 나쁜 언론을 감별하는 게 어렵지 않습니다. 자의적인 게이트 키핑으로 뉴스소비자들을 외눈박이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보편적인 뉴스 가치 판단이 아니라 의도한 방향으로 여론을 몰아가는 아젠다 세팅을 하는 건 아닌지, 악의적인 프레임을 씌워 뉴스소비자들의 독자적인 판단을 방해하고 있지 않은지, 그걸 의심해보면 됩니다.
뉴스소비자들이 똑똑해질수록 언론이 감히 시민들을 속이려 들지 못합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한국의 주류 언론에는 자정 기능이 없습니다. 좋은 언론, 나쁜 언론을 감별하는 눈을 가진 똑똑한 시민들이 많아지면, 나쁜 언론은 시장에서 도태되거나 퇴출됩니다.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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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post/Ugkxg-oXM1f9y__ijhtLiJ8am1nwzg1_nI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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